편백나무 숲 쪽으로,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 편백나무 숲, 돌아가게 되는 곳

윤대녕, 편백나무 숲 쪽으로

혈연, 가족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 그리고 그만큼, 각자가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한쪽의 마음을 들어주면, 다른 한쪽에게 미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고 찾아야 될 것을 부정한 채 살아갔다고 할 수 있다. 찬영을 데려가겠다는 친아버지의 말을 거절했하고 삼십년간 비밀로 했던 백부인 양아버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원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서는 백부와의 인연을 끊은 채 살았던 찬영, 찬영 모친이 밖에 나가 낳은 자식, 찬영을 버리고 그 자식을 키운 아버지, 아버지가 주문진에서 만나 아내의 자식과 함께 새로 딸을 낳아 키웠던 여인, 찬영과 결혼했지만 후사 문제 등 찬영의 집안과 얽히고 싶어 하지 않는 찬영의 아내 등, 모두가 그 내면에 가지고 있던 것은 혈육에의 정에 대한 갈망지만, 이들의 행동과 속내는 한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명이 다하면 사람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는 백부의 말처럼, 사람은 언젠가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 편백나무 숲은 돌아가야 하는 공간이며, 모든 원망과 엇갈림이 비로소 해소되는 공간이다. 대정에 드는 무덤과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적인 장소에서 각각의 인물은 자신이 부정해왔고 버려두었던 것들로 돌아간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찬영을 찾았고, 편백나무 숲을 찾아갔다. 찬영은 그런 아버지를 찾아서 백부의 옛 집으로 돌아갔고, 백부는 찬영에게 삼십년 동안 숨겨왔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찬영의 집안과 얽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찬영의 아내 역시 아버님을 모시고 올라오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사과한다. 아마 아버지를 찾은 찬영은 주문진으로 향하게 될 것 같다. 찬영이 편백나무 숲을 찾은 밤은 고요하고, 습하고, 어둑하지만 한편으로는 향취와 추억이 가득 차있고 충만하게 느껴진다.

어둠속에서 다시 새벽빛이 다가오고, 잠든 연꽃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태어나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그들은 모두 남이던가? 이제는 남이 아니던가?”라는 찬영의 말에서 원망의 감정을 뛰어넘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정을 느꼈다. 찬영은 집을 나서며 나중에 돌아올 것을 대비해 대문을 조금 비껴놓았다. 그때 내리던 비는 차가운 죽음의 비가 아니라, 묵은 감정을 씻어주는 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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