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죽어가는 가운데, 그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과 증거는, 행동들은, 망막에 맺혔던 무수한 영상들과 고막을 떨었던 수없는 울림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게 되면,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는 아주 희미하게 남거나 아예 없어질 것이다. 다만 흙속에 육체가 녹아들고, 대기 속에 내 폐 속에 들어갔다 나온 공기가 자리하는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김훈의 를 읽으며 유물 몇 점이나 뼈는 그 물건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쓰였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인물인지 말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기원리’는 버려진 장소이다. AD 4년에 ‘기원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을..
조경란, 풍선을 샀어 철학의 매력에 빠져서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십년 만에 돌아온 ‘나’에게 펼쳐졌던 생경한 서울의 풍경은, 익숙해서 문제 삼지 않고 있던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었다. 세상은 점점 각박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따뜻한 장소들은 점점 협소해지고, 순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놀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물질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같은 것을 보고 즐기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개인으로 존재할 뿐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다. 우리는 마주보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휴대폰 문자를, 영화 스크린을 한 방향으로 ..
윤대녕, 편백나무 숲 쪽으로 혈연, 가족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 그리고 그만큼, 각자가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한쪽의 마음을 들어주면, 다른 한쪽에게 미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고 찾아야 될 것을 부정한 채 살아갔다고 할 수 있다. 찬영을 데려가겠다는 친아버지의 말을 거절했하고 삼십년간 비밀로 했던 백부인 양아버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원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서는 백부와의 인연을 끊은 채 살았던 찬영, 찬영 모친이 밖에 나가 낳은 자식, 찬영을 버리고 그 자식을 키운 아버지, 아버지가 주문진에서 만나 아내의 자식과 함께 새로 딸을 낳아 키웠던 여인, 찬영과 ..
김원일, 오마니별 지금 현재 ‘분단’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가. ‘분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틀림없는 현실이지만, 혈육이 서로 죽고 죽였던 전쟁, 가족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갈려져 선 하나로 갈려지고 말았던 아픔은 점점 묻혀져 점점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만 남아가는 듯 하다. 의 조평안은 분단의 현실은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마니와 누이가 있었고, 피난 중에 폭격으로 죽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 ‘이중길’이라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남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던, 분단의 기억을 상실하고 살아간다. 누이가 죽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으레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애써 생각해내고 알아내려 ..
김시습, 남염부주지 ‘귀신’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한 판타지나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귀신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존재론적인 물음이나 진위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이 아니다. ‘귀신’이 실제로 있건 없건, ‘귀신’에 대한 논의는 따라서 존재해 왔고, 그러한 논의는 그 당시의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귀신’에 대한 논의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생각과 깊이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며,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이 ‘귀신’을 믿었다면, 그들은 ‘귀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았다고 할 수 ..
김시습,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하생기우전 와 은 죽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귀신’과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환상성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이야기에서는 공통적으로 이미 죽은 여인이 주인공 남자들을 만나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무덤과 순장품이 나오고, 이러한 소재를 바탕으로 죽은 여인의 가족들과 주인공 남성이 만난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결말에서 차이가 난다. 의 여인은 양생과의 잠깐의 인연을 끝으로, 이승과 저승을 뛰어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환생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성이 ‘삶’과 ‘죽음’이라는 현실의 벽,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의 여인은 하생과의 ..
덴동어미화전가 ‘화전가’는 규방가사의 하나이다. 화전가는 주로 여성들이 춘삼월 호시절을 당하여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여성들의 놀이 욕망, 풍류와 흥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문학 장르라 할 수 있다. 화전가는 당일 몸치장을 하는 모습부터, 화전을 만들며 노는 장면, 그리고 아쉬워하면서 집에 가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전가에는 이러한 풍류와 흥의 정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신변탄식->봄날의 찬미->놀이 공론->택일->통문->시부모의 승낙->준비->치장->승지 찬미->화전->회식->여흥->파연 감회->이별과 재회의 기약->귀가->결사’로 흔히 정리되는 화전가의 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화전가에는‘신변탄식’의 부분..
변강쇠가 ‘변강쇠가’에는 성적인 표현이 다른 작품에 비해서 자유롭게 나오고 있다. 변강쇠와 옹녀가 식을 올리던 대낮에 청석관에서 서로의 성기를 묘사하며 부르는 노래는, 유교에 억눌린 양반 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솔함이 녹아 있다. 등장인물들은 유교적 가치 등에 얽매이지 않고 노골적으로 성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자유롭게 서로의 몸을 더듬는다. 그러나 얼핏 자유로워 보이고 해방되어 보이는 이 들의 성, 혹은 사랑은, 가부장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변강쇠가’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변강쇠는 작품 초중반에 죽어 송장이 되고,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변강쇠의 아내 옹녀이다. 옹녀는 소위 말해서 ‘노는 여자’로 묘사된다. 옹녀는 남자들을 홀리는 교태나 아양에 능수능란하다. 이는 단순..
장화홍련전 장화홍련전은 전형적인, 계모가 전처의 자식들을 박해하는 이야기이다. 계모인 ‘흉녀 허씨’라는 여인은 생김생김부터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행실은 그 용모에 걸맞게 더욱 간악한 인물이다. 그러나 흉녀의 악행, 그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불쌍한 두 자매, 그리고 그 두 자매의 원을 풀어준 부사의 이야기만을 중심으로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사건의 모든 원흉은 흉녀에게만 있는가? 흉녀 허씨에게로 모든 비판의 화살을 돌리기 전에, 당시 사회에 퍼져 있었던 남아선호와 부성의 부재로 장화홍련전은 다시 읽을 수 있다. 물론 흉녀라는 인물이 고전 소설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악’에 속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흉녀’를 집안에 불러들인 인물은 누구인가? ‘흉녀’를 불러들이게 된 계기는..
영화,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 몰락 조금 갑갑한 영화였다. 그 ‘갑갑함’은 이 영화에서 대체 ‘무엇’을 봐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영화를 대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이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영화’에 약간의 ‘오락성’을 늘 염두에 두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어떤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하더라도, 보통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그것에 픽션과 상상력을 가미해서 ‘재해석’을 하거나 창작자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작품을 감상 할 때는 그래서 그 작품이 일부는 ‘픽션’임을 염두에 둔 상태로 그 속에서 한..
요하임 페스트, 히틀러 최후의 14일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보류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나 자신이 이 주제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14일 동안 히틀러와 그 주변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과를 서술하고 있는 1,3,5,7장의 경우는 ‘가장 정확하게 여겨지는 사실’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리고 2,4,6,8장의 경우에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좀 더 많이 개입되어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반쯤은 ‘소설’보다는 ‘역사서’로 읽혔다. 왜냐하면 이 책의 내용이 ‘실화’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화’를 되도록 허구를 섞지 않고 정확히 다루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의 상황이 실제로 이 책에서 묘사하는 그대로였는지는 알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향수 소설 그루누이라는 인물에게는 인간적인 고통이나 고뇌 등이 처음부터 빠져있다. 그루누이는 다른 모든 잣대 없이 오로지 라는 하나의 잣대만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한다. 어떤 면에서 후각에 의존한 판단은 은밀한 속임수를 그대로 드러내고, 눈속임을 없애고 모든 사물을 ‘냄새’만큼은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면에서 공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쩌면 ‘사랑’, ‘윤리’, ‘법’ 등 사람들 사이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는 요소들에는 그러한 ‘냄새’가 없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그루누이에게 처 음 부터 이러한 것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있다. 모든 판단이 유보된 채, 그루누이의 행동과 사건 자체를 중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