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몰락 괴벨스, 몰락 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 독일 영화
- 책, 독서, 서평
- 2022. 8. 12.
영화,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 몰락
조금 갑갑한 영화였다.
그 ‘갑갑함’은 이 영화에서 대체 ‘무엇’을 봐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영화를 대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이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영화’에 약간의 ‘오락성’을 늘 염두에 두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어떤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하더라도, 보통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그것에 픽션과 상상력을 가미해서 ‘재해석’을 하거나 창작자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작품을 감상 할 때는 그래서 그 작품이 일부는 ‘픽션’임을 염두에 둔 상태로 그 속에서 한 인물의 내면에 주목하거나, 인간관계에 주목하거나, 영화의 주제 등을 생각하며 ‘즐기며’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몰락’의 경우에는 이 자체가 ‘사실’에 기초하고,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보여주고 재현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픽션’으로 즐기기에는 거북했다.
그렇다고 ‘사실의 재현’과 ‘지식’, ‘설명’을 중심으로 놓고 이 영화를 보기에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또 불편함이 있었다. 그 뒤편에 ‘숨어있는’ 의도와 목소리가 미미하게나마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장면들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눈앞에서 ‘객관적인 듯’이 벌어지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기에는 한편으로 미심쩍었으니까. (그렇다고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바탕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문제.)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히틀러가 식사를 하며 약육강식론을 논하던 부분이었다. 요하임 페스트의 책에서 그 부분을 읽었을 때 상상했던 장면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틀러의 말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의아해하고 동의를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과 반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흥분해서 마구 말을 토해냈던 히틀러의 모습이 나에게는 그렇게 ‘의아하게’느껴지지 않았을 뿐더러, 정말 ‘이제 와서 저 말이 저들에게 낯선 말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비극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괴벨스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과, 메데이아의 그것은 꽤 다르게 느껴졌다. 사실 ‘왜’ 다르게 느꼈는지가 중요하겠지만, 스스로 아직 말로 제대로 풀어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마도 메데이아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는 행동은 ‘사랑에 대한 복수’라는 측면에서 자식들에 대한 애정 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행위라고 여겨지는 반면에, 괴벨스 부인이 자식들을 죽인 것은 (그것이 자식들이 느끼기에는 어땠든 지간에)‘자식들’을 위해서라는 느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체가 일종의 합리화일 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국가사회주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자식들의 미래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식들을 죽였으니까.
어쨌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배우들의 열연은 정말 볼만했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역시 히틀러와 나치즘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좀 더 공부하고, 고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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